* (간접적인 스포일러 다수)
* 당신의 허진호 애착도 검사






마음에 드는 누군가가 있다. 그 여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저기 혹시 지금 전화해도 되니?"
바로 통화를 하면 될텐데, 문자를 왜 보내는 걸까.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늦은 시각이란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답답하다. 허진호의 남자들은 그랬다. 식당에 간다. 메뉴판이 각자에게 전달된다. "우리 무엇을 먹을까요?" 허진호의 남자들은 물어볼 것이다. 여자는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 말한다. "나 아무거나 잘 먹어요." 허진호의 남자들은 순간 웃는다. 그러나 그는 그런 대답들을 싫어할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시킨다. 맛있게 잘 먹었다는 감탄과 함께 쏟아지는 침들은 자동적으로 입에 발라져 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라면을 끓여먹겠지. 앞에서 티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티를 내지 않는' 티가 난다. 그런 모습들이 허진호의 남자들이었다. 그리고 '티를 내지 않는' 티가 타인에게 확인이 되면, 그것은 이별의 징후로 나타났다.





(주)소심남의 네 번째 주주총회가 열렸다. 나도 참가했다. 현수막엔 역시 촌스러운 제목이 적혀 있었다. 행복이란다. 젊음, 청춘, 기쁨, 아픔, 슬픔,..누가 이 시대에 그런 굵직하고 닭살 돋는 슬로건을 걸던가. 그래도 믿는 사람들이 꽤 된다. 혹자는 종교라고도 그랬다. 소액 주주들이 삼삼오오 모여 진행되는 행사를 쳐다본다. 딱딱한 회의 진행과는 달리, (주)소심남의 주주총회는 무대가 설치되고, 그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연기를 펼친다. 이 모습에 익숙한지 횟수로 십여 년이 되어간다. 그 '촌빨' 날리는 아저씨들의 옷, 여자들도 요즘 애들과 달리 참 자기를 못 꾸민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즘 애들에게 딱 인기 없는 상이다. 그래도 좋단다. 이번에는 뭘까, 눈을 크게 부릅뜨고 쳐다본다.



허진호의 영화를 보면 철부지와 능구렁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연애란 것이 그런게 아닐까. "너 이때까지 몇 번 사귀어 봤어?"란 그 말, 참 '드라마적'인 표현 같은데, 실제로 그런 말 참 자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당신은 철부지입니까?"혹은 "당신은 능구렁이입니까?" 물어보는 그 시간. 처음엔 거짓말을 한다. (허진호의 영화에서 거짓말은 참 매력적이다.) 주차요원 아가씨가 나이를 물었을 때 낡은 사진관을 지키던 아저씨는 나이를 속이다 들통난다. 드러누워 자고 있던 조명기사 총각에게 아리따운 여자 피디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총각은 자고 있었냐고 묻는 그녀의 말에 아니라고 말했다. 마음에 드는 간경변 걸린 남자에게 혈액형을 물어보는 그녀. 자신은 o형으로 알고 있었는데, 검사를 받아보니 원래 a형이라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는 거짓말. 그 뻔하디 뻔한 수줍은 거짓말이 고개를 서서히 들면서 다가온다. 비오는 날 가까이 서로의 몸을 접촉하며 같이 우산을 쓰고, 팔장을 슬며시 끼고, 영화에는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던데, 그것은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 것 같다며, 은근히 상대방을 타박하기까지 한다. 때론 그 거짓말로 시작된 돌담길을 건너는 그들은 타액을 섞고, 애무하며, 전희를 교환한다.(<외출>의 섹스는 그런 의미에서 소심남,소심
녀의 세상을 향한 저항 방식이었다.)




사실 철부지는 철부지이고, 능구렁이는 능구렁이다라는 구도는 연애를 해보면 잘못된 구분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철부지같은 매력에 끌린 능구렁이는, 막상 철부지에게 숨겨져 있는 능구렁이같은 면에 놀라고, 능구렁이 같은 성격에 혹한 철부지는 막상 능구렁이가 평소 취하는 밀가루 같은 삶에 실망하기도 한다. 허진호의 영화는 결국 철부지의 마음 속에 능구렁이가 들어있다는 걸 확인하는 작업, 반대로 능구렁이의 마음에 철부지가 있다는 걸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영화 속 두 인연의 균열은 타인과의 감정적 접촉을 통해 자신에게 드러나는(아니, 사실은 타인이 드러내주길 바랬던) '다른(아니, 사실은 숨겨져 있던)' 모습에 아파하는 것, (네가 발견해줘 고마웠지만, 이제는 그게 네가 원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버린) 그 모습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다며 두 손을 싹싹 빌고서 질질 짜는 것, 시간이 지나 어색하게 만났을 때 미련과 절제 사이에서 삶이 가르쳐준 어떤 선택을 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람들마다 무의식적으로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게 되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이-특히 사랑과 이별의 상처라는 매개로 모인- '허진호 3장 16절'을 줄줄 외울 때 나도 그 대열에 동참했었다. 이 구절을 다 외우고, 자리를 뜰 때면 평소보다 힘이 빨리 빠진다. 그러나, 가끔은 반문이 생긴다. "정말 내가 믿고 있는 이 구절이 나에게 효용이 있는 걸까?" 사실 나에게 다가온 위로의 포근함은 얼마 없었는데, 억지로 내가 그것을 더 채워 이 정도면 족하다고, 고맙다고 자위한 것은 아닐까. <봄날은 간다>의 은수를 보면서, '물고기자리'의 본분.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그 상대방이 자신에게 마음을 그만큼 주지 않으면 이내 돌아서서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물고기자리의 계명이 떠오르고, (주) 소심남의 소액주주들은 또 '나쁜 여자'(혹 순화해서 강한 여자)들을 기다릴지도.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이런 기다림이 결국 "(이런) 삶이 재미있니?"라는 종결문으로 끝날 것 같은 예감으로 가득찬다.



허진호의 영화들은 예고편이 필요 없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봄날은 간다>를 예고하고,
<봄날은 간다>는 <외출>을 예고하고, <외출>은 <행복>을 예고하고. 예고편이 필요 없다는 말을 뒤집어보자. 그것은 지금 내가 바라보는 작품에 전작의 과거들이 다 묻어있다는 말로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허진호의 영화는 한 편만 딱 잘라보면 재미가 없다. 연달아 봐야 한다. 점점 이 소심한 감독의 '약발'이 다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나는 "세상엔 이런 사랑이 있어?"라고 의구심 잔뜩 섞인 표정으로 일자 못구멍에 십자드라이버를 대고 있는데 (안될 걸 알면서도), "그런 것도 있어요."라며 땀 뻘뻘 흘리며 드라이버를 조인다.



재미는 없는데, 가슴엔 와닿는다. 맨날 마시는 콜라인 줄 알고 '병나발'불었는데, 간장 맛이 난다.(사실 간장인 걸 이미 알면서도) 이정도면 중독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중독의 기운이, 내가 붙들고 있던 추억의 자양분이 슬슬 떨어져가고 있다. <행복>은 그랬다.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하루에 두 번 극장문을 나왔다. 그러고보니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이랑, 나올 때 마음이랑 다르다는 그 말. 이게 정말 연애와 관련된 명구다. 들어갔을 땐 "우리 사귈래요?"란 집안살림 잘하는 서영이의 말에 그렇게 설레다가도, 나오면 "너에게 상처주고 싶어"라며 한유주를 부등켜 안고 우는 한성이의 말에 이내 풀이 죽는다. "우리도 죽으면 저렇게 같이 묻힐까?"라며 상우에게 따스하게 기대는 은수와 서로가 죽을 때 같이 있기로 해주자던 은희와 영수의 '달콤한 거짓말'에 우리..얼마나 많이 속았던가. 그런 우리를 염려했던지 노희경은 <굿바이 솔로>에서 배종옥을 시켜 말한다.
첫사랑이니,.,영원이니..널 위해 죽겠다는 그런 말..믿지 말라고.



나는 철부지인 줄 알았는데, 능구렁이 같은 내가 싫다. 그래도 그런 나를 누군가 받아줬으면, 오늘도 지구는 그렇게 아파하고, 그렇게 기뻐한다. 지금 이 순간도 술기운에 마구 날려 보내는 문자 메시지를 띠로 묶으면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벤허>를 찍을 때 썼다던 필름 길이는 상대가 안될 것이고, 사랑한다는 말과 헤어지자는 언어의 성찬들은 저 더 바다를 가득 채우고 남는다. 그렇게 아침을 맞는다. 그리고 밤을 맞는다. 결국 행복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그게 '쿨하다!'라며 감정마저 계급으로 나눠버리는 나를 포함한 인간들, <행복>을 보면서, "쿨은 무슨 얼어죽을 쿨!"이라며 욕을 하고 싶었다. (요즘 들어 '쿨하다'라는 표현이 참 싫다. 그런 표현 누가 만든건지. 누가 그렇게 '쿨함'이란 걸 따뜻하게 포장해 놓은건지. 콱 얼어죽어라, 쿨.) 허진호는 그러고보면 쿨한 사람이 아니다. 어찌 보면 쿨하지 않은 저 남자를 우리가 억지로 쿨하다고 포장지로 둘둘 싸버린 건 아닌지. 덕분에 우리는 쿨한 게 뭔지 알게 되었다고 으쓱했지만, 결국 참회하고 다시 '희망의 집'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그게 진정 무슨 희망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가고 있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