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dream 2007. 9. 30. 04:33

GO


 

사쿠라이는 후후, 하고 웃은 후,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말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홋카이도에 맹인 안내견 양로원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는 나이가 너무 들어 맹인 안내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개가 여생을 보내는 장소래. 

나, 그런 컨셉의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동했거든. 

그래서 화면으로 기어들어갈 것처럼 열심히 봤는데,

10년이나 같이 생활한 어떤 할머니하고 개가 헤어지는 장면을 보여주는 거야. 

앞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와 골든 리트리버 수놈이었는데,

할머니하고 개는 한 시간쯤 꼭 껴안은 채 움직이지 않았어. 

간신히 담당 직원이 떼어놓아 작별을 하기는 했는데,

차를 타고 양로원을 떠나는 할머니가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면서

'잘 있어, 안녕'하고
개의 이름을 외치는데,

개는 꼼짝 않고 앉은 채 멀어져가는 차 쪽을 쳐다만 보고 있는 거야. 

그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맹인 안내견은 그렇게 하도록 훈련을 받았으니까. 

마음의 동요를 겉으로 표현해서는 절대로 안 되고, 짖어서도 안 되니까. 

차가 양로원 문을 나서서 저 멀리로 사라져가는데도 개는 헤어진 장소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할머니가 사라진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거야.  몇 시간 동안이나. 

10년동안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사람이 곁에서 없어진 거잖아. 

충격이 너무 커서 움직이지도 못했을 거야.

아마, 할머니하고 한낮에 헤어졌는데,

해가 기울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무지하게 세찬 비가. 

그런데 꼼짝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던 개가 고개를 들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웡, 하고 짖기 시작하는 거야. 웡- 웡-, 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이야. 

그런데도 그 모습이 조금도 비참하거나 볼품없어 보이지 않는 거야. 

개는 등과 가슴에서 턱으로 이어지는 선을 꼿꼿하게 펴고 마치 완벽한 조각상 같았어. 

나, 그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어버렸어.  개가 짖는 소리에 맞추어 엉- 엉-, 하고 말이야."


"결국 무슨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나는 물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개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는 거. 

그 개울음 소리는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웠어.

나, 좋아하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다가, 만약 그 사람을 잃게 된다면,

그 개처럼 울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니?"


나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팔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사쿠라이의 손등에 내 손을 포갰다.

우리는 잠시동안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고 그냥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_  가네시로 가즈키 <GO>






아는 분의 블로그에 갔다가
생각난김에 포스팅.

순전히,
최초로 나오키 문학상을 탄 재일교표,라는 타이틀때문에 찾아보게 된 책이었지만
아주 일본적이면서도 묘하게 한국적인
흡인력있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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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lo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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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Favicon of https://shain.tistory.com BlogIcon Shain

    Go..라면. 아 혹시 그 영화로 만들어진 내용인가요?
    영화는 보았는데..그랬었나보군요..

    아이들이 자주 보는 '록맨 에그제'라는 만화엔
    사이버펫이 나와요.. 아이와 평생을 함께하는 보조 컴퓨터 같은 거고 작은 게임기 안에 넣어다니고 그러는데..
    나중에 인간이 죽으면 그 '사람같은' 사이버펫이 어떻게 되는지
    애니에서는 못 본 거 같아요..

    그 개처럼 사랑을 하는 법을 인간이 알고 있는지
    가끔은 궁금합니다.. 배울 수 있겠죠?

    2007.10.01 00:41 신고
    •  Addr  Edit/Del Favicon of https://clozer.tistory.com BlogIcon clozer

      네~ 가네시로 가즈키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거에요.
      혹시 얼마 전에 이준기 주연으로 만들어진
      플라이 대디 플라이,라는 영화를 알고 계신가요?
      동명의 일본 영화도 있는데, 역시 같은 작가의 작품이에요.

      아...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항상 그 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꺼리는 것 같아요.
      두렵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인간들은,
      그 맹인견이나 사이버펫보다
      약한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2007.10.03 04:18 신고